“기존 글로벌 공급망 붕괴… ‘디지털 전환’에서 효율성 답 찾아야”
[커버스토리=코로나19가 바꾼 세계, 빅 퀘스천5]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안은
-김원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혁신 압력 커진 지금이 전환 최적기”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크면 클수록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지금과는 더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다. 김원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은 “코로나19는 세계 산업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자생 능력과 산업의 스마트 전환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원장은 서울대에서 재료공학 석사와 기술경영경제정책 박사 학위를 받았다. 디지털 기술과 경영에 대한 전문성을 두루 갖춘 전문가다. 미국 뉴욕대 겸임조교수를 거쳐 2005년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 카이스트 산업미래전략연구소(CIFS)도 이끌고 있다.
-코로나19가 글로벌 산업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코로나19 사태 초반만 해도 영향력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했죠. 가장 먼저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됐고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문에서도 자본의 흐름과 관련해 이미 글로벌 지형을 바꿀 만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유럽 경제가 타격을 크게 받으면서 이미 중국 자본이 유럽 내의 기업 사냥에 나섰고 유럽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하는 중입니다. 코로나19는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이벤트라기보다 국가 간 정치·경제 구조의 재편을 가져오는 변화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탈세계화’와 ‘자국 우선주의’가 더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미·중 무역 갈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탈세계화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나타났던 현상들입니다. 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겁니다. 코로나19 이후의 글로벌 경제는 ‘단절되고 닫힌 경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화된 시장과 달리 단절된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수익성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어떻게 바뀔까요.
“지금까지 글로벌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세계화된 시장에서 서로에게 최고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협력하면 다 같이 크게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과 같은 공산권 국가들의 시장이 개방되면서 실제로 많은 글로벌 국가들이 성장했죠. 갇혀 있던 ‘저임금 노동 시장’이 세계 시장으로 급격하게 확대된 영향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효율성’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문제는 글로벌 정치·경제가 안정적일 때는 잘 굴러가던 이 시스템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코로나19처럼 불시에 닥치는 위험들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에 ‘효율성’보다 ‘위험의 분산’이 훨씬 중요한 경영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각 국가와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할 것입니다. 각 국가마다 생산 네트워크의 혁신이 가속화될 겁니다. 비용이 조금 더 들고 시스템이 조금 덜 효율적이더라도 ‘덜 위험한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다극화될 겁니다.”
-글로벌 공급망 다극화에서 ‘생산 네트워크의 혁신’은 왜 중요한가요.
“코로나19는 각 국가와 기업들마다 글로벌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더욱 선명하게 발현하는 방아쇠가 될 겁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각각의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겠죠.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에 이는 큰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기업들은 비용이 많이 증가할 수밖에 없죠. 디지털 전환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위험 분산’을 위해 ‘덜 효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효율성은 기업들에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를 추구하면서 ‘디지털 전환’을 통해 효율성을 보완해 나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산업의 60~70%가 제조업이잖아요.”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코로나19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디지털 전환’이라고 하면 단순히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하드웨어를 바꾼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디지털 전환의 기반은 소프트웨어입니다. 다시 말해 조직의 운영 체계가 디지털 경제에 맞게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기업들 또한 조직 체계를 빠르게 바꿔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 트렌드는 어떻게 바뀔까요.
“디지털 시대 제품의 혁신의 키워드는 ‘제조업과 서비스’의 융합입니다. 이미 제조업만으로는 제품의 차별화가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서비스 측면에서의 혁신’을 더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겠죠. 자동차와 가전 등 제조업 기반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이 특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디지털 혁신’이 더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듭니다. 인력·시간·비용 등 모든 측면에서요. 하지만 어느 시기를 넘기고 나면 혁신에 따른 성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를 흔히 ‘J커브’라고 말합니다. 디지털 혁신 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을 때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스마트 워크, 원격 의료,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혁신의 압력’이 커지고 있어요. 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새로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내부에서도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평가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도산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크건 작건 많은 한계 기업들이 정리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각 산업별로 생존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조의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기업들까지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 경우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또 대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빠르고 유연하게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협력사나 중소기업들로부터 협조를 얻어내는 게 위기 대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코로나19 이후 국가의 경쟁력을 평가하는데 새로운 기준들이 변경될 겁니다. ‘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특히 강조될 수 있죠. 한국은 이미 여러 측면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적극적으로 국제 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적인 위상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회가 될 겁니다. 무엇보다 디지털과 관련해서는 이미 한국은 상당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잖아요. 한국이 사회·경제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적 리더’로서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